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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번역은 반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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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은 화두 “번역은 반역이다”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3/2003/07/009100003200307202328115.html “번역은 반역이다.” 이제는 독자들에게도 익숙해진 격언이 된 독일 철학자 슐레겔의 이 말은 번역작업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번역은 단순히 언어가 아니라 완결된 하나의 작품에 담긴 문화와 정서와 경험을 옮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관적이고 다층적인 의미로 쓰여지기 마련인 문학작품을 번역할 때 번역작업은 훨씬 더 까다로워진다. 지난 3월 영미문학연구회에서 고전문학 번역평가 사업으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번역본 21종을 ‘샘플 평가’한 결과 원작의 작품성을 살려낸 번역본이 한 종도 없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기자의 이메일을 경유해 문학작품의 번역문제에 대한 두 전문번역가의 의미있는 논쟁이 벌어졌다. 프랑스어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백선희씨는 지난해 출간된 프랑스 소설가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문학세계사)의 번역에 ‘첨언’이 지나치게 많아 원작의 느낌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담은 이메일을 지난 14일 <한겨레>에 보내왔다. 이 작품을 번역한 이세욱씨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전작품을 비롯해 파트릭 모디아노, 움베르토 에코 등 프랑스어권 주요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해온 전문번역가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 번역이론을 공부하고 있는 이씨는 백씨의 메일을 전달받은 다음날 백씨가 지적한 문장들에 일일이 번역의 근거를 덧붙여 성실한 답변을 보내왔다. 이 답신은 “번역자로서 원작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떻게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한 고뇌를 담고 있다. 두 번역가의 시각차이를 보여주는 문장을 예로 들어보면 이러하다. 소설 32쪽의 문장 “시아버지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짜릿한 기분이 든다는 듯 몸을 떨었다”에서 백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짜릿한 기분이 든다는 듯”이라는 표현은 원문에 없는 것으로 번역자의 ‘과도한 친절’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몸을 떨다’라는 우리 표현은 보통 추위나 공포와 관련되기 때문에 시아버지의 내면의 변화를 발견해 가는 대목임을 감안해 심리적 해석을 첨가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 “나는 면이 알맞게 익었는지 씹어 보다가 혀를 데었다”(65쪽)라는 문장에서 “면이 알맞게 익었는지 씹어 보다가”는 원작에 없다는 게 백씨의 주장. 이씨는 “스파게티의 익은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씹어 보는 일은 우리 문화에서 익숙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다짜고짜 혀을 데었다고 말하는 것이 독자들에게는 느닷없이 느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첨언”이라고 대답해 두 언어권의 문화적 장벽 사이에 번역자가 놓아야 할 다리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백씨는 이씨의 번역방식이 단문중심인 가발다의 원작에 ‘덧칠’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이씨는 “그런 문장이 우리말로 옮겨질 때, 자칫하면 맥락이 닿지 않거나 무미건조해질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번역자의 심리적 해석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두 주장의 대립은 오랫동안 평행선을 그려 온 번역논쟁의 핵심- 원문에 대한 충실성이냐 텍스트의 심리적 의미에 대한 충실성이냐-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세욱씨는 “프랑스어와 우리말처럼 계통이 전혀 다른 언어에서는 낱말들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것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문화적, 심리적 장벽이 있기 때문에 번역의 충실성을 논할 때 훨씬 더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2003.07.21 한겨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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