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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성 (2003-12-21 15:40:58, Hit : 11543, Vote : 1883)
Subject  
   히스클리프식 삶과 사랑
히스클리프식 삶과 사랑

이번 학기 영소설 강의와 채점을 마감하고 단상을 적는다.

[제목] 히스클리프식 삶과 사랑

브론테는 영국 요크지역의 낮은 구릉지를 배경으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소설 『폭풍의 언덕』을 썼다. 3세대에 걸친 애증의 삶을 계절의 순환과 맞물리게 하고 광활한 우주 아래 전개하고 있다.

종달새 지저귀고 개울물이 정겨운 소릴 내며 흘러가는 감미로운 봄, 무성하게 자란 보라색 히드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를 관찰할 수 있는 여름, 스산한 가을, 차가운 북풍이 인정사정없이 휘몰아치는 겨울. 이처럼 연속적으로 계절이 순환되는 가운데 탄생과 죽음이 뒤따른다. 종국에는 지상에서 펼쳐진 인간의 애증의 드라마는 긴 시간 속의 한 순간에 불과하다. 그리고 드라마의 주인공들, 인간은 하늘 아래 미소한 존재, 한 줌의 흙이 되고 만다.

언덕 위에 위치하여 거센 북풍에 노출된 집과 거친 성격의 집주인 히스클리프는 거친 자연을 반영하며 어둡고 음울한 영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평온한 영국 땅에 폭풍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히스클리프. 그의 삶과 사랑은 어떤 것이었으며, 우리에게 어떨 울림과 경종을 전해주는가?

히스클리프는 고아, 무산자, 주변인이다. 이 세상에 방치된 그는 누군가의 보살핌(그것이 애정이든 모성애든 우정이든 인간애든)을 필요로 하는 가엾은 존재다. 이런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인간의 열망이 무시되었을 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에 대한 집착과 광기 어린 복수가 전개된다. 이런 그의 행동을 엽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우리도 그처럼 될 수 있을 테니까.

자신의 연인 캐서린이 죽던 날, 히스클리프는 밤새도록 이슬을 맞으며 기다린다. 비보를 접한 그는 피가 흐를 정도로 나무 옹기에 머리를 박으며 운다. 죽은 캐서린은 18년 동안 대지를 떠돌다 워더링 하이츠로 와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히스클리프가 자신을 학대했던 힌들리를 학대하자, 복수심에 사로잡힌 힌들리는 칼이 장착된 권총을 들고 날뛴다. 히스클리프는 죽은 캐서의 얼굴을 한번 힐끗 보기위해 땅을 파고 관 뚜껑을 열고는 마음이 평온해지며, 죽은 그녀 곁으로 빨리 다가가고자 단식을 선택하여 죽음에 이른다. 이 얼마나 엽기적인 일인가? 가슴 속 깊은 곳에 물파스 한 방울 떨어뜨려 놓은 것 같은 시린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런 히스클리프식 사랑은 번개 팅과 성폭력의 세태에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과연 순수한 낭만적 사랑의 총화이었을까?

고아 소년 히스클리프가 갈망했던 것은, 단지 남녀 간의 사랑의 감정만은 아니었다. 그는 박탈당한 모성애, 가족애, 한 인간으로서 존귀함을 더 갈망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복수는 단지 린튼에게 캐서린을 빼앗긴 사람의 분풀이 차원이 아니다. 그는 이런 복수가 무의미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는 낭만적 사랑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생존 원했던 것이다. 이런 그의 갈망은 배고픔의 차원이다. 젖을 달라고 보채는 아기처럼. 놀랍게도 두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사이에 격정적인 포옹과 키스는 단 몇 번에 불과하다. 히스클리프가 아픈 캐서린을 찾아오는 장면에서 이런 장면이 보일 뿐이다. 세속적이지 않으며 순수한 사랑일 수 있다. 죽은 그녀의 혼령을 사실로 맞이할 정도로 정신이 이상해진 그가 두 눈을 뜬 채로 죽는 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에 대한 한이 많아서? 자신을 타자로 차별했던 세상이 차별을 반복하지 않도록 지켜보는 파수꾼이 되기 위해서?

다행히도,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러 제3세대에 속하는 캐시와 헤어튼이 화해하면서 이 소설은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증오와 분열이 있는 곳에 사랑과 화합이 들어선다. 화자인 넬리는 “그들은[캐시와 헤어튼] 같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었지요.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인정해주려고 노력했고, 다른 사람 역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지요.” 히스클리프가 학대하고 무지하게 만들었던 헤어튼은 죽은 히스클리프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악한 사람에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인간애를 보여준다. 이처럼 이 소설은 사랑을 치유책으로 제시한다. 이런 여성의 부드러운 힘은 남성화자의 목소리로 포장된 이 소설의 작가가 여성작가 임을 암시한다.

평생을 한 여성을 위해 살아온 히스클리프식 존재방식은 만난 지 100일을 축하하는 신세대의 풍속도가 너무 가벼운 것임을 보여준다. 눈을 뜨고 죽는 순간에도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모습이 나타나길 바랐던 것 같다. 금식을 함으로써 죽은 캐서린의 무덤 곁으로 빨리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행한 그의 모습이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수했던 것 같다. 이런 히스클리프식 사랑을 엽기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그만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인스턴트식 사랑에 익숙해졌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라색과 히스꽃 사이를 날고 있는 나방은 히스클리프를 반기는 캐서린이 환생한 모습이 아닐까?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법적인 남편 에드거와 영혼의 친구 히스클리프)가 땅 속에서 소유권 각축전을 벌이는 갈등의 현실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니.

우리는 히스클리프식 사랑을 부러워하는가? 아니면 혐오하는가? 안도현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그렇게 뜨거운 사람이었냐." 히스클리프식 사랑을 보면 절로 숙연해지고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자기만의 방(소외의 무덤) 속에 갇혀 있거나 평행선을 그리며 사는 사람들은 히스클리프식 사랑을 부러워하리다. 쓸쓸히 퇴장하는 화자요 독신남성인 록우드처럼. 히스클리프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거친 자연에 핀 한 송이 야생초였다. 바람에 날려 아름다운 노란 꽃을 피운 민들레 홀씨였다. 그는 자신을 차별했던 사람들, 지배계급, 영국사회에 맞선 민초였다. 그는 햇볕 아래에서 녹는 달콤한 초콜릿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진흙이었다. 그의 존재방식은 도덕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세련된 문명이 아니라 거친 자연이었다.

히스클리프를 타자로 간주하는 것은 타자를 위한 윤리학의 부재를 의미한다. 타자에 대한 관용(똘레랑스)을 지닐 때 화평의 현실이 전개된다. 모두가 똑 같은 인간이다. 그런데 왜 한쪽이 다른 쪽을 차별하고 학대하는가? 이런 불평등의 현실이 부메랑이 되어 복수를 자초한다. 나와 비슷한 존재(동일자)만 원하고 나와 다른 존재(타자)를 배척하려는 내 자신 속의 충동부터 잘 다스려야 한다. 인종차별과 전쟁은 바로 자신 속에서 타자를 배려하는 윤리학이 부재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폭풍의 언덕』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영국판 순애보로 혹은 영국판 공포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이 소설을 읽으며 만나게 되는 많은 인물들에 대해 인간적인 이해를 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로렌스가 말했듯이, 소설은 우리의 인생을 전율시키며 우리에게 계시를 주는 ‘삶의 불꽃’(flame of life)같은 것이다.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히스클리프의 사랑과 생존방식이 가벼운 사랑과 타자를 차별하는 시대에 맞선 강한 항의로 다가온다. 올 겨울 이런 시린 사랑을 원하는가? 원한다면 그(녀)대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003 @ Copyrights 박종성

명작의 고향, 소설 『폭풍의 언덕』의 배경이 된 Top Withens. 저멀리 보라빛 헤더꽃 숲. 지붕은 날라가고 양의 배설물이 널려있는 이 곳(채석장)이 격렬한 사랑의 중심지였다니! 유리창을 때려 외지인 우드 씨의 잠을 깨운 오른쪽 나뭇가지가 캐서린 유령의 손으로 돌변한다

Carpenters의 "Heather" 배경음악
http://www.youtube.com/watch?v=gUr2KoWPh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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