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219   61   1
  View Articles

Name  
   박종성 (2004-10-11 08:05:20, Hit : 15126, Vote : 2334)
Subject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타계
http://www.hani.co.kr/section-007000000/2004/10/007000000200410101846038.html

한겨레신문/ 2004.10.10(일)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타계 (사진은 메뉴 British culture)

“권위에 맞서라” 한평생 실천적 삶

9일 지병으로 숨진 자크 데리다는 일체의 권위에 맞서 그 모순을 폭로하는 데 평생을 바친 실천적 철학자다. 해체주의로 대표되는 그의 난해한 사유체제는 인류문명 전반에 걸친 근본적이고 실천적인 관심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이론이 지나치게 허무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생전의 다양하고도 정력적인 현실참여는 해체주의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웅변했다.

고인은 1930년 7월15일 프랑스령 알제리 엘비아르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2년 10월, 식민지와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과 관련된 법을 청원했다는 이유로 알제리의 벤 아크눈 국립고등학교에서 제적당했다. 사춘기의 혼란은 폭넓은 독서로 이어졌고, 몇년 뒤 파리로 간 그는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를 거쳐 프랑스 인문학의 산실인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80년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차례 낙방 끝에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해 소르본 대학 철학과에 재직했고, 알튀세르 등의 초청으로 1965년 모교인 고등사범학교로 자리를 옮겨 1984년까지 가르쳤다. 1983년엔 국제 철학학교를 만들어 초대 교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자명한 ‘진리’·위계질서 전복 시도
문학·영화 넘나들며 노벨상 후보로
미테랑 “당대 최고 철학자” 찬사도


1981년 체코의 저항 지식인들과 모임을 연 뒤 체코 당국에 체포·구금됐고, 이후에도 넬슨 만델라 구명운동과 인종차별 및 동성애자 차별 철폐운동에 참여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아랍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최근에도 걸프전과 9·11 동시다발테러, 유럽통합 등에 대해 발언하며 실천적 지식인의 길을 걸었다. 그의 철학이 난해한 것으로 알려진 이유는 기존의 정돈된 철학적 체계나 용어, 고전적 문체 등을 스스로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데리다의 사유가 근대 인류문명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진리’와 그로 인해 인간을 지배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 데서 비롯됐다. 이런 탈현대의 문제의식을 데리다는 ‘해체’라 이름 붙였다.

데리다는 서구적 근대의 밑바탕이 되는 저작과 학설들이 불안정한 언어와 모순되는 층위로 구성돼 있고 이로 인해 그 내부로부터 해체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냈다. 정신과 물질, 보편과 개별, 남성과 여성 등 합리주의의 기본개념인 대립항 구조는 여기에 들어맞지 않는 모든 것을 주변화하거나 억압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해체이론은 플라톤 이후 서양 지성사를 분해해 기존의 위계질서를 전복하는 동시에 인류의 새로운 인식지평을 개척한 선구자적인 것이었다.

데리다는 철학 외에도 문학과 건축, 영화, 회화 등 다양한 예술영역에 해체론을 적용하거나 스스로 예술작업에 참여했으며, 그 업적을 인정받아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마르지 않는 지적 열정과 자유로운 사유는 〈차이와 반복〉 〈그라마톨로지〉 〈마르크스의 유령들〉 등 수백편의 저술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당대 최고의 철학자’라는 찬사를 바쳤지만, 데리다의 사유가 다다른 지평을 고려하자면 그 업적은 인류 역사의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기념비적인 것 가운데 하나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데리다가 사망했다.

글/ 오길영 sesk.com 자유게시판

다시 한명의 현대철학의 거장, 삶과 사유를 치열하게 일치시키려고 했던 한명의 지성인이 세상을 떴다. 그의 죽음에 마음이 가는 이유? 단지 그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혹은 아래 기사에서 지적하듯이 서구사상사 전체에 걸쳐 손꼽을 만한, 독창적이고 '유명한' 사상가이기때문만은 아니다.

근년에 세상을 뜬 다른 사상가들, 들뢰즈, 싸이드, 부르디외 등이 그랬듯이 데리다 또한 그가 제기했던 '해체'의 사상을 단지 추상적이고 난해한 사상으로서만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 그가 살아간 현실 속에서 실천하려고 했다. 따라서 데리다가 시도한 '해체의 정치'는 미국에서 수입되어 포장된, 그래서 다시 미국산 포장품으로 한국에 수입된 '해체주의'와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뛰어난 사상가나 비평가의 죽음이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개척한 사상의 세련됨이나 독창성때문만은 아니리라. 그보다는 그렇게 펼쳐진 사상의 궤적과 사상가의 구체적 삶이 실천 속에서 만나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이들 사상가들이 각자 걸어간 사상의 길은 달랐지만, 데리다의 '해체'가 그렇듯이, 그 사상은 결국 억압없는 삶의 희망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데리다의 부음 소식을 들으니, 그간 사놓고 읽지는 못했던 그의 책들, 현실로 향하는 '해체의 정치'를 드러내주는 <테러시대의 철학>과 <법의 힘>을 한번 찬찬히 읽어봐야지 싶은 마음이 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Name
Memo  


Password

Prev
   충북대 직장협의회 통합 설문 결과

오길영
Next
   한림원 글: 엘프리데 옐리넥(Elfriede Jelinek)

박종성


no
subject
name
date
hit
*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타계

박종성
2004/10/11 15126 2334
 
   佛 '철학의 거장' 자크 데리다 타계

박종성
2004/10/11 10955 1722
 
   In Loving Memory of Jacques Derrida

박종성
2004/10/11 9785 1341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