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219   61   11
  View Articles

Name  
   mindup (2010-01-04 19:40:37, Hit : 10893, Vote : 1460)
Subject  
   [감상문] 절벽위에 핀 자유
이번 학기 감상문 중 좋은 글 한 편을 골랐다. 온몸으로 밀고나간 치열한 글이다. 여성적 글쓰기의 좋은 예 같기도 하다. 이전에 일간지에서 잃었던 이주향의 [폭풍의 언덕] 감상글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담당교수로서 보람을 느낀다.
---

폭풍의 언덕 감상문

절벽위에 핀 자유/ 글 영문과 김연

무성하게 자란 수풀을 헤치고 나온 듯, 힘이 든다.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한숨이 나온다.
  몇 해 전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본 영화가 있다. “사랑을 놓치다”  제목을 보는 순간, 불현듯 ‘사랑’과 ‘놓치다’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치 옷을 다 입고, 마지막 장식을 위한 장신구로 적합한 악세사리를 발견한 듯, 그래, 사랑은 놓쳐야 하는 건지도 몰라 했었다. 나에게 사랑은 그냥 그 수준으로 딱 적당한 것이었다. 놓친 사랑과 다시 찾아온 사랑, 적당한 상처와 안타까움, 그리고 회복의 사랑. 그러니까 Heathcliff의 Catherin에 대한 사랑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사랑’에서 훨씬 동떨어진 것이다. 오차의 여지를 충분히 준다 해도 말이다.  그 본능적이고 철두철미한 ‘사랑’에는 낭만보다 처절함과 비명이 있어 지켜보는 사람을 소름끼치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캐서린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 흔한 ‘남 녀 간의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싶다. 뭐랄까..동물적인 찬 기운, 그 서늘한 기운 때문일까. 그들의 사랑은 정말 기이해 보인다.
   책을 읽는 내내 사실 이 격렬하고 무서운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알고 있는  맥락을 총 동원하는 노력을 했었다. 어찌됐건 인간의 감정과 행동이라는 것은 타고난 천성이외에 환경적인 영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안에서 설명 가능한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Heathcliff의 불행한 태생과 어린 시절의 학대경험,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영혼의 동반자 Catherine의 존재, 그리고 그들의 운명과 연결되는 천성 등을 무서운 사랑과 잔인한 복수라는 긴 끈의 시작점 정도로 여기는 것이 이치에 맞아 보였다. 상식적으로 서로 끼워져야 하는 조각들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그러나 어느 순간 손가락 관절이 얼얼한 정도로 문짝을 두들긴다 하더라도, ‘상식’은 결코 육중한 Wuthering Hight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폭풍처럼 불어왔다.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었던 Emily Bronte. 그녀는 원시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덩어리, 생 날것의 펄떡거림 그리고 야생성이 고스란히 꿈틀대는 Catherine과 Heathcliff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물론 그녀의 방법은 불편하고 벅차서 도망치고 싶게 만든다. 도대체 이것이 가능하기는 한 얘기인가 하며 가슴에 찬물을 들이 부어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Heathcliff처럼 소파에 기대어 heath꽃 한 무더기 안고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떠난 그녀의 거짓 없는 삶에는 이 소설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게 하는 경이로운 구석이 있다.  이것은 히스클리프의 잔인한 악행과 악마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잣대로 이 소설을 읽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Emily Bronte에게 자유란 어떤 의미였을까? Catherine은 열병에 시달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And that wind sounding in the firs by the lattice. Do let me feel it-it comes straight down the moor-do let me have one breath!" Catherine의 영혼은 황무지를 떠난 그 순간 그녀의 빛을 잃었다. 그녀는 그녀의 또 다른 영혼, Heathcliff를 받아들여야하는 중요한 순간에 그녀의 영혼을 crimson 빛깔, 그들만의 천국에 판 것이다. Emily Bronte는 냉정하고 가혹하게 그녀의 잘못된 선택에 댓가를 치르게 하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Catherine이 Heathcliff를 선택했다면..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그녀의 선택이 불러온 황폐함 때문이다. 영혼의 자유를 배신한다는 것은 죽어서도 황무지를 20년 동안 배회하게 하는 것이며, 어떠한 타협도 용서될 수 없는 죄악인 것이다. Heathcliff는 Catherine에게 절규한다. “You have killed yourself!" 그러니까 Wuthering Heights는 서늘한 사랑의 모습을 한 자유에 대한 얘기다.
   자유는 인생의 비밀과 그 깨달음으로 연결되는 어찌보면 아슬아슬한 절벽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발 잘 못 내딛으면 돌이킬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 나 같이 평범한 사람에겐 그저 아찔한 현기증 정도로 느껴질 뿐이지만 말이다.  그녀가 제시한 거칠은 자유와 사랑에 모두 동의 할 순 없지만, 융통성이라 불리는 온갖 변형에 맞서 그 原形의 모습을 지켜내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상의 가치있는 것들은 결국 사나운 짐승처럼 달려들어 치열하고 아슬아슬하게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고, 그런 사람들의 희생과 노고로 유지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Heathcliff는  스스로 곡기를 끊고, 자신의 죽음을 창조함으로써 神과 결별하고, 자유를 선택한다. 그의 선택은 언제나 그렇듯이 무모하고 잔인해보이지만, 해방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래서 절벽위에 핀 Heath꽃, Heathcliff는 무시무시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Emily Bronte와 Catherine, Heathcliff에게 애정을 보내는 것과 별개로 Cathy와 Hareton의 사랑이 이루어진 것은 정말 잘 된 일이다. Emily Bronte가 꿈꾸던 이상적인 세상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세상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고나 할까. 어찌됐던 쓴 약을 먹은 후 받은 사탕처럼 달콤하기 그지 없다. 달리는 폭주기관차에 올라탄 것처럼 조마조마했고, 이제 그 원시성에 나름 매력을 느끼던 찰나에 갑자기 멈춘 거 같아 어리둥절하지만, 어쩐지 이젠 한숨 돌리고 잠 좀 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열정’은 강렬한 정적 몰두를 하는 각성상태라고 한다. 사랑이든, 자유든 뭐든 간에 이런 강력한 정적 몰두를 할 수 있는 각성상태를 경험한다는 것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한 질 좋은 환각상태라고 생각한다. 정말 오래간만에 이런 환각상태로 한 학기 내내 보냈다. 그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자유에 대한 열정으로 흠뻑 젖은 느낌이다. 고맙기 그지없는 경험이었고, 덕분에 단조로웠던 인생이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Emily Bronte가 한 없이 안쓰러워 꼭 안아주고 싶은 생각만 들었는데, 지금은 외출복 벗어 놓듯이 삶을 벗어 놓고 투명하게 세상을 떠난 그녀의 영혼이 한 없이 부럽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삶에 대한 태도처럼 진실했다고 본다. 아마도 그녀의 그런 진실함 때문에 아직도 Wuthering Height 에 대한 애정이 지속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열정과 투명함, 그리고진실은 서로 통한다. 겨울이다. 그녀만큼 뜨겁고 투명하게 살고 싶어진다.
Copyright@2009 by 김연

신수민
와... 소름끼치도록 좋은 감상문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10/01/08   

Name
Memo  


Password

Prev
   셰익스피어에 경배를! [1]

mindup
Next
   밴드(좋아밴), 옥탑방

mindup


Copyright 1999-2024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