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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dup (2010-02-13 15:41:45, Hit : 8810, Vote :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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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라드와 바흐찐
예전에서 썼던 서평을 퍼온다.

소설의 대화이론  - 콘라드와 바흐찐  
권덕하 (지은이) | 소명출판 | 2002-06-10

대화를 위하여 물결치는 가슴 (평점 )  1
jspark61 | 2002-07-21 19:47 | 댓글 (0)  

소설가 콘라드(1957-1924)와 비평가 바흐찐(1895-1975) 두 사람을 한 곳에 불러모아 공동점을 찾아내려는 저자의 지적탐색 작업이 한 마디로 경이롭다. 이 책의 특징은 바흐찐의 비평적 틀을 이용하여 콘라드 소설을 아주 독창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저자의 유려한 글솜씨와 해박한 비평적 지식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제국주의 전성기에 반제국주의적 생각을 담은 글을 썼던 소설가 조셉 콘라드와 소비에트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 대화주의란 비평적 화두를 널리 유포시켰던 미하일 바흐찐 사이의 공통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 점을 집요하게 추구하며 만족스런 대답을 준다.

책머리에 저자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의 상황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일생동안 글쓰는 삶을 업(業)으로 여기고 진정한 인간관계의 회복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4) 을 꼽는다. 작가의 글쓰기는, 그 양식이 비평이든 소설이든지 간에, 작가가 처한 시대적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한다. 제국주의와 전체주의가 위력을 떨치던 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은 인간의 개체성과 다양한 목소리(다성성)를 부정하며 공식적이며 단선적인 진리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현실에 맞서 저항적 글쓰기를 했다.

콘라드와 바흐찐은 우상숭배와 비인간화 속에서 위기를 포착하고 그 대안을 자아와 타자 사이의 대화와 상호소통에서 찾고자 했다. 특히, 소설이란 장르는 '상호 모순적인 견해나 관점과 가치 판단이 서로 마주치고 반박하는 세계이다'(367). 그래서 저자는 다음처럼 말한다. ''나'라는 주체가 '너(thou)'라는 주체와의 관계를 통해 '우리'를 경험하는 일이 미학적, 윤리적, 존재론적으로 최선이란 생각이 이 두 사람[콘라드와 바흐찐]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371). 고립주의 벗어나 대화주의로 옮겨가 연대감을 경험하는 것은 인간해방으로 다가가는 과정이기에, 대화주의는 정의와 윤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상숭배와 절대적 진리를 거부하고 자아와 타자 사이의 민주적 관계망을 형성하고자 하는 대화주의는 윤리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콘라드는 소설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대화를 나누는 서술방식과 미학적 장치를 통하여 지배담론의 독단에 저항했다. 그는 작가는 더 이상 신이 아니며, 소설 속에는 전지전능한 화자도 없다는 신념을 갖고 이른바 '중심이 없는 소설'을 썼다. 이와 유사하게, 바흐찐도 획일적 수직적 문화현상을 비판하고 나섰다. 슬라브 문화권 출신의 두 사람이 유럽 중심주의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주체와 타자가 상호소통하며 응답하는 방식(이것이 대화적 상상력이다)을 통하여 주체가 구성된다는 믿음을 지닌 두 사람은 제국주의와 전체주의가 만들어낸 단일한/ 통합된 주체 혹은 공식적 이미지의 허구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래서 바흐찐은 다음처럼 말한다. '한 인간에 대해 대화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타인의 입을 통해 말하여진 어떤 인간에 대한 진실은, 즉 이차적인 진실은 ... 거짓말이 되어 버린다'(191).

이처럼, 중심권력을 전복시키는 두 삐딱이의 저항의 몸짖이 인상적이며 아름답다. 콘라드와 바흐찐이 소설이란 장르를 옹호하는 이유는, 소설이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그릇이며, 서로 충돌하는 각축장이기에 중심권력의 네트워크에 저항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바흐찐은 '소설을 통하여 우리의 삶과 예술이 대화적이며 다성적인 세계로 변화되기를 요구하고 있다.'(359)고 말한다. 소설이 열린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화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바흐찐의 사유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유효한 접근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글쓰기가 왜 정치적 윤리적 행위인지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아울러서, 대화를 위하여 물결치는 콘라드와 바흐찐의 가슴이 우리의 가슴이 되길 기대해본다. 이 방대한 논리를 도도한 강물의 흐름처럼 써내려간 저자의 앞으로의 평론활동이 기대된다.

글 박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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