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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dup (2010-02-15 00:20:13, Hit : 8847, Vote : 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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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터 미뇰로
"직접적인 식민통치 시대는 갔지만 지식의 지정학을 통한 식민지배는 오히려 강화됐다." - 월터 미뇰로 Walter Mignolo

[펌] 한겨레
서구지식 식민통치 맞선 ‘진보지식 해방투쟁’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27) 월터 미뇰로 Walter Mignolo

월터 미뇰로(1947~)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프랑스 파리 고등연구원(Ecoles des Hautes Etudes)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미국 듀크대 교수이다. 기호학을 전공했으나 점차 연구 영역을 넓혀 문학이론, 문화인류학, 문화연구 등을 넘나들었다. 전 지구적 식민성, 지식의 지정학, 경계사유, 탈식민주의 등이 주요 관심사로, 대표적인 저술로는 <르네상스의 어두운 측면>(1995), <지역의 역사/전 지구적 설계>(1999), <라틴아메리카, 그 이름 뒤에 감춰진 현실>(2005) 등이 있다. 마지막 책은 번역 작업이 끝나 도서출판 그린비에서 곧 출간될 예정이며, 이에 맞춰 내한하여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와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미뇰로는 직접적인 식민통치 시대는 갔지만 지식의 지정학을 통한 식민지배는 오히려 강화됐다고 본다. 최근 탈식민주의 담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신자유주의를 배태한 서구 중심 지식이 결국은 세계 경제위기를 초래한 현실에 대한 반성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식하다. 그래서 들뢰즈, 네그리, 하트, 라캉, 지젝 등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이미 ‘포스트-’가 붙은 이론들 때문에 현기증을 느끼던 터에, 마침내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유학 시절 페루, 스페인, 칠레, 아르헨티나 등으로 떠돌아다니던 내게 위험을 경고한 이가 있었는데도 깨닫지 못했으니 다 내 불찰이다. 그 사람은 그저 며칠 미국에 들렀을 때 만난 교포 택시기사였다. 그는 내게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 도대체 중남미에서 뭐 배울 게 있느냐고.

나는 정말 몰랐다. 지식에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줄을. 중심에서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듣고, 또 믿는다. 하지만 변방에서 이야기하면 시큰둥하다. 중심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 표절이라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 한다. 아니 보통은 듣지도 않는다. 세계사회포럼이 파국을 그렇게 경고했건만 사람들은 오직 다보스포럼만 쳐다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국제 금융위기였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은 스위스만 바라보며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를 바란다. 이처럼 지식에서 왕후장상의 씨는 ‘무엇을 말하는가’와 전혀 상관이 없다. 오직 ‘어디서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지식의 진실 여부보다 발화 위치가 더 중요한 셈이다. 그래서 지식은 지정학적이다. 지식도 지정학적 요충지가 있는 것이다.

월터 미뇰로는 이런 현실을 단호히 거부한다. 지식의 영역에서 식민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뇰로는 직접적인 식민통치가 대세였던 제국주의 시대는 갔지만, 지식의 지정학을 통한 식민통치는 오히려 강화되어 정치나 경제 등의 영역에서 실효적인 식민통치를 뒷받침하고 작동시킨다고 본다. 미뇰로가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론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식민성, 즉 직접적인 지배 없는 식민통치를 타파하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를 비판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고 억압하는 서구 담론인 오리엔탈리즘을 해부, 비판했다는 점에서 미뇰로는 사이드의 식민성 비판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미뇰로가 보기에 문제는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옥시덴탈리즘이다. 서구가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거니 하면서, 비서구를 기술하고 개념화하고 서열화해도 되는 특권이 있다는 인식인 옥시덴탈리즘이 있었기에 오리엔탈리즘도 발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이드 예찬론자들은 수긍하지 못하겠지만, 미뇰로에게 옥시덴탈리즘은 모든 사유의 범주와 세계를 분류하는 지정학적 담론인 반면, 오리엔탈리즘은 그 결과 파생된 하나의 연구 영역일 뿐이다. 그래서 미뇰로는 사이드의 포스트식민주의(postcolonialism) 대신 포스트옥시덴탈리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아가 탈식민주의(decolonialism)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포스트-’가 ‘후기’인지 ‘탈’(脫)인지는 논란거리겠지만 아무튼 포스트식민주의보다 더 완벽한 식민성 극복이 탈식민주의의 꿈이다. 1990년대 엔리케 두셀, 아니발 키하노, 월터 미뇰로 등이 탈식민주의 논의에 중요한 구실을 했고, 이로부터 근대성/식민성/탈식민성 연구 그룹이 탄생되었다. 미뇰로는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포함하는 국제적인 탈식민주의 네트워크 구축에 힘쓰면서 그룹의 좌장 구실을 하고 있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대한 이 그룹의 비판은 그 구성원들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월러스틴은 우리가 사는 현대의 기원이 1450~1640년이며, 이때부터 작동한 체제를 근대 세계체제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이 체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작동원리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지식(월러스틴은 이를 지문화 geoculture라고 부른다)이 18세기 프랑스혁명 즈음에 확고하게 정립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근대성/식민성/탈식민성 연구 그룹은 1450년이라는 기점, 지문화의 18세기 정립론, 근대 세계체제라는 명칭 등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월러스틴을 비판한다.

이 그룹이 보기에 근대 세계체제의 1450년 태동론은 근대성이 서구 고유의 것이라는 서구 중심적 시각의 산물이다. 철학자 엔리케 두셀은 근대성 자생론은 서구가 만든 신화일 뿐이며, 사실은 복수의 근대성이 소통하는(trans) 전 지구적 현상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지문화의 18세기 정립론에 대해서도 두셀은 2단계 근대성론으로 반론을 제기한다. 아메리카 정복으로 1단계 근대성이,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등으로 18세기에 2단계 근대성이 발현되었다는 것이 요지이다. 월러스틴의 18세기론을 배격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유럽 지식의 우월함만 부각시키고, 그 지식이 원주민 수탈을 정당화시켰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뇰로는 르네상스 시대에 가톨릭, 서적, 판화, 지도 등이 어떻게 인종 차별과 정복 등을 정당화시키는 지식을 구축했는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식이 오늘날까지도 작동함으로써 식민성이 강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근대 세계체제라는 명칭에 대한 비판에는 사회학자 키하노가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아메리카 정복을 서구 근대성의 기원으로 본다. 이를 계기로 인종차별에 입각한 국제적인 노동분업 시스템, 즉 오늘날과 같은 폭력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잉태되고 가동되었다는 이유에서이다. 특별히 수탈 구조를 부각시키는 것은 근대성의 뒤에 감추어진 식민성을 직시하라는 주문이다. 키하노가 보기에 근대성과 식민성은 동시에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양자가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근대 세계체제라는 명칭은 식민성을 누락시킴으로써 진실을 호도하는 효과를 야기한다. 이에 키하노는 근대/식민 세계체제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동전의 양면’이라는 표현에서 연구 그룹이 어떤 진영에 속해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중심의 발전과 주변의 저발전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을 비유하기 위해 종속이론가인 군더 프랑크가 사용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연구 그룹은 페루의 마르크스주의자 마리아테기, 프란츠 파농, 종속이론, 해방철학 등으로 이어진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적 사유를 계승하고 있다. 실제로 두셀은 해방철학의 대표적 학자이고, 키하노도 저명한 종속이론가였다. 1980년대의 경제위기와 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로 이념의 시대가 갔을 때 학계의 중심에서 당연히 밀려났어야 할 사람들이 아직도 건재,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더 주목을 받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두셀과 키하노가 과거의 문제의식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유연한 연구물을 산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의 문제의식이 옳다고 믿는 이들을 다시 증가시킨 현실 때문이다. 몇 년 전 <고삐 풀린 현대성>이라는 책이 번역된 적이 있다. 세계화를 긍정적으로 볼 것을 주문한 대목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재작년 탈식민주의 그룹이 다수 참여한 <고삐 풀린 식민성>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세계화가 사실은 식민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물론 필자들이 염두에 둔 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이다. 신자유주의를 배태한 서구 지식이 결국은 세계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만 오늘날의 현실에서 식민성이 고삐가 풀려 미쳐 날뛰고 있다는 진단은 설득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우석균/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우석균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페루 가톨릭대에서 석사, 스페인 콤플루텐세대에서 중남미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잉카 IN 안데스>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라틴 아메리카를 찾아서>(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공역),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마술적 사실주의>(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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