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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한겨레 관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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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관련글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3/2003/09/009100003200309261823124.html 팔레스타인의 비판적 지성 잠들다 (한겨레 신문) 에드워드 사이드 타계 지난 25일 백혈병으로 타계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이자 학문적 양심을 몸으로 실천한 지성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비교문학 교수로, 이론가요 저명한 팔레스타인 행동가였던 그를 가리켜 아랍의 평론가들은 팔레스타인의 애국자이자 문학이론과 동양학 연구의 지평을 연 뛰어난 지성인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서구의편견 부수고 헌팅턴류의 이분법 사고.야만성 폭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통합 민주국가 꿈꿔 1935년 당시 영국 통치 하의 팔레스타인 영토였던 예루살렘에서 난 그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이집트 카이로에서 살았고, 51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전공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컬럼비아, 하버드, 예일대 등에서 강의하는 한편, 문학평론가이자 문명비평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오리엔탈리즘〉(1978년)은 서구인들의 동양관이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적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한 허상임을 밝혀낸 명저로 평가받는다. 93년 〈문화와 제국주의〉 출간에 이어 2001년에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중단과 지식인들의 참된 구실을 강조하는 글들을 묶은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을 펴냈다. 오리엔탈리즘은 정치, 경제뿐 아니라 역사학·문화인류학·지리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지식영역에서 동양에 대한 서구의 절대 우월성을 강조하는 담론이며,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와 야만적 관행의 산물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 책이다. 미국의 공격이 새뮤얼 헌팅턴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서구가 동양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무지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 사이드는 문화에 대한 열정과 편견에 대한 분노를 함께 지닌 지성이었다. 2000년 팔레스타인 탄압에 항의하며 레바논 국경의 이스라엘 경비초소에 돌을 던지고 있다. 당시 컬럼비아대는 “그의 행동은 학문 자유의 원칙에 따른 것” 이라며 지지했다. <더 리뷰> 제공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대의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였지만 전공인 영문학으로부터 음악과 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도 열정적인 저술활동을 했다. 음악에 관한 저서인 〈뮤지컬 일래버레이션스〉(1991년)는 그 한 예일 뿐이다. 영국 〈인디펜던트〉의 베테랑급 중동 특파원 로버트 피스크는 26일 “사이드가 ‘지적인 투사’이자 학구적인 음악연구자였으나 비판에 있어서는 도도하고 냉정했으며, 그 자신이 우상이자 우상파괴자였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통합된 민주주의 국가를 원했던 사이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잘못 대접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을 계속 비판해 왔다. 2000년에는 레바논 국경의 이스라엘 경비초소를 향해 항의의 뜻으로 돌을 던졌으나, 컬럼비아대가 “그 돌이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범법도 아니었으며, 그의 행동은 학문의 자유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며 지지한 일화는 유명하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 간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 사이드는 또 야세르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에 불리한 거래를 한 것으로 믿는다며 그를 비판하기도 했다. 아라파트는 성명에서 팔레스타인 국민들은 “국제적 지성인이자 팔레스타인의 아들인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의 타계를 슬픔과 비통으로 애도한다”며 “사이드는 팔레스타인의 민족적 투쟁에서 활동적이며 중요한 지위를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