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227   62   61
  View Articles

Name  
   박종성 (2003-09-19 23:35:47, Hit : 15952, Vote : 4106)
Subject  
   [북아일랜드] 신·구교 분쟁
이니스프리 섬과 살인공장(퍼온글)  
한겨레에서 퍼온 글입니다. 2003년 9월 5일자

예이츠 시를 인용하여 평화와 분쟁의 문제를 짚어보고 있습니다.
예이츠 시에서 말하는 평화란 번잡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돌아가고 싶은 마음 속의 고향/ 이상향을 의미하지요. 이곳에 잘못 사용된(misplaced) 같지만, 영문학을 배워 글에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그리고 잘 쓴 글로 여겨집니다. 한번 읽어보시죠.

http://peace.hani.co.kr/life/view.php?tbn=news&num=75&page=1
[2-6. 북아일랜드] 신·구교 분쟁 피흘린 땅 평화는 소걸음으로 온다

평화, 멀지만 가야할 길
<2부>학살과 보복, 그 악순환을 넘어
6. 북아일랜드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욋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벌꿀 통 하나

벌 윙윙대는 숲 속에 나 혼자 살으리


거기서 얼마간 평화 맛 보리

평화는 천천히 내리는 것

아침에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까지

----."


기억속의 고향은 언제나 작고 아름답고 평화롭다. 굳이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의 호도>가 아니더라도, 그의 고향 슬라이고는 더 이상의 수사가 필요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목가적인 곳이라고 한다. 예이츠로 하여 고향의 목가적 풍경이 빛난 것이 아니라, 고향으로 하여 예이츠의 시는 태어났다고도 한다. 그 덕에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으니, 예이츠는 행복하다.

적개심·공포에 휩싸인 벨파스트

슬라이고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는 19세기초 식민주의자의 잘못된 농업정책으로 인구의 1/3이 굶어죽고, 1/3이 고향을 떠났다. 끊임없는 유혈투쟁으로 그 땅엔 선연한 피자국이 마를 날 없었다. 그러나 식민주의자들은 끝끝내 이 섬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으니, 아일랜드의 목가적 아름다움은 비극을 부르는 주술과도 같았다. 서쪽 끝 슬라이고에서 해 뜨는 곳으로 북위 55도를 따라 3시간 정도 달리면 동쪽 끝 마을 벨파스트가 나온다. 길위의 풍경은 예이츠의 시가 그려낸 풍경들과 다르지 않다. 북아일랜드인들 모두가 믿고 따른다는 신의 축복으로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이 잠시 멈추고, 물기 잔득 머금은 구름이 비껴 선 날이라면 그 풍경은 더욱 눈부시다. 끝없이 이어지는 구릉지대는 부드러운 젖가슴 같고, 떨기나무 짙푸른 숲은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가른다. 암갈색 숲을 빠져나온 바람은 아이들의 나풀대는 단발머리와도 같은 목초밭을 쓸고 지나간다. 그곳엔 암소와 양떼가 그 게으른 천성을 즐기며 유유자적한다. 지천에 먹을 것이니 하루 종일 누워 있어도 그 젖가슴은 언제나 퉁퉁하고 살집은 비옥하다. 구릉의 능선에는 줄 지은 관목들이 하늘과 땅을 가른다.

누가 감히 이곳을 분쟁의 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가 그곳에서 이웃에 대한 배반과, 형제의 추방을 꿈꿀 수 있을까. 그러나 어떤 풍경에든 사람이 개입하면 산은 뭉개지고, 소와 양은 고기와 털가죽으로 바뀌고, 사람은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종으로 삼고자 하는 법. 그러하니 제국에 의해 짓밟힌 북아일랜드가, 복면한 괴한이 소총을 든 채 아이를 안고 쓰러진 여인을 밟고 있는 벽그림과 함께 떠오르거나, 붉은 페인트로 갈겨쓴 '우리는 전쟁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격문과 함께 떠오르는 건, 서글픈 일일 뿐 새로운 일은 아니다.

북아일랜드는 가장 오랜 분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를 지배했던 앵글로색슨은 그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숨기고 싶어했던 야만까지도 드러냈다. 앵글로색슨과 서유럽 백인은 이 허물과 상처난 자존심을 가리기 위해 특별히 이곳에 온갖 정성을 쏟았다. 수많은 평화협상을 주선했고, 미완의 평화협정에 대해서까지 노벨평화상을 주며 안정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벨파스트는 여전히 충돌을 예고하는 적개심의 두터운 전투복 속에 웅크리고 있다.

거리에 경찰이 없는 것을 평화의 징후로 읽어서는 안된다. 정복을 입지 않은 것은 언제 어디서 린치를 당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순찰차에도 경찰 표시가 없다. 대신 서벨파스트, 북벨파스트의 충돌 우려지역에는 감시용 씨씨티브이가 높다란 가로등 꼭데기마다 숨겨져 있다. 경찰서나 파출소에도 자신의 신분을 알리는 표시가 없다. 건물 높이의 두배쯤 되는 철책으로 정체를 알릴 뿐이다. 공무원들이건 일반 직장인이건 실명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실명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갈등과 충돌을 자양분 삼는 정치인 뿐이다. 20여년을 그곳에서 살아온 전왕택씨는 "이곳 공무원에겐 얼굴이 없다"는 말로 그 익명성을 설명한다.

그들의 겸손과 친절을 타고난 것으로 오해해서도 않된다. 그것은 오랜 갈등과 충돌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자세로 이해해야 한다고 데릭 윌슨 교수(얼스터 대학)는 말한다. 그들은 절대로 다른 사람의 고향을 묻지도 않고, 종교나 출신학교를 묻지 않는다.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성씨가 무엇인지조차 묻지 않는다. 그저 하루에 12번 이상 날씨만을 화제 삼아 이야기한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집단 속으로 들어가면 달라진다. 벽그림 속에서처럼 가슴에 숨겨둔 복면을 꺼내 뒤집어쓴다. 적개심을 씨줄 삼고 공포를 날줄 삼아 짠 복면이다. 신교도들은 오렌지 공이 최종적인 전투에서 승리하고 아일랜드를 정복했다는 날(7월12일), 전쟁 당시의 복장을 한 채 스코틀랜드 피리와 북 소리에 맞춰 구교도의 거리를 행진한다. 피정복자인 구교도들의 자존심을 자근자근 밟아버린다. 어찌 충돌이 없을까.

우범지대인 서벨파스트나 북벨파스트 내 신교도 영토에는 수많은 유니언 잭(영연방 국기)이 미루나무 잎사귀처럼 휘날린다. 복면한 자유의 투사 혹은 얼스터방위군 벽그림이 줄지어 있다. 헐리우드 거리의 집단거주지역 입구에는, 북미원주민을 사냥하기 위해 세운 백인 토벌대의 요새처럼 온갖 유형의 깃발들이 펄럭인다. 국기는 자신의 정체성이자, 다른 집단에 대한 적개심과 공격성의 상징이다. 구교도 지역 역시 숫적으론 적지만 아일랜드 국기가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온건하긴 하지만 역시 선동적인 벽그림이 즐비하다. 감자 기근 때의 고통, 끌려가는 형제들을 담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자치정부 출범·무자해제 성과도

그러나 평화는 소의 게으른 걸음으로나마 오긴 오는가 보다. 1998년 4월 평화협정 체결 이후 분쟁의 해결을 위한 정치적인 조처들이 꾸준히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신구교의 강온파로 구성된 4개 정당이 권력을 공유하는 자치정부를 출범시켰다. 구교도의 배후 구실을 했던 아일랜드가 북아일랜드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관이 설립됐고, 아일랜드는 문제의 영토조항(북아일랜드를 자신의 영토에 포함시킨)을 없앴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문제를 함께 논의할 기구도 마련했다. 아일랜드공화국군도 제한적이나마 무장해제를 약속했다. 정치 경제 사회적 차별을 규제할 위원회도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부구조는 기층의 변화가 전제될 때만 제 구실을 하는 법. 신교의 강경파이자 제3당인 민주연합당은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신교쪽의 민병대들의 호전성은 변함이 없다. 마찬가지로 IRA는 무장해제에 소극적이다. 자신을 지킬 마지막 보루이자, 지금까지 영국과 신교쪽의 양보를 이끌어낸 유일한 협상력인 무력을 손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신교쪽 민병대에 비견되는 ’리얼 IRA’는 테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2002년 7월엔 스톤몬트게이트라 명명된 스파이 사건이 발생해 그해 11월 자치의회가 출범 3년만에 해산됐다.

그렇다고 북아일랜드의 평화 프로세스가 1998년 이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정무 담당 고위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평화 프로세스 자체가 중단된 것은 아니다. 자치의회만 해산됐을 뿐이다. 약속된 각 조항들은 계속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평화 프로세스가 다시 가동될 경우, 그것은 원점이 아니라 중단된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출발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실제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는 평화협정에 따른 제반 조처를 진전시키는데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 당초 5월로 예정됐던 자치의회 선거도 무기한 연기했다. 평화협정의 주역이었던 온건파들(신교쪽의 얼스터연합당과 구교쪽의 사회민주당)이 곤경에 빠지고 강경파들(신교쪽의 민주연합당, 구교쪽의 ’리얼 IRA’)이 득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예이츠의 말대로, 평화는 천천히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특히 빈부격차가 여전하고 생활 속 차별이 계속되는 한, 정치적 협상이 아무리 앞서 가도 평화는 더욱 느린 걸음으로 올 것 같다.

곽병찬 기자 chankb@hani.co.kr

Name
Memo  


Password

Prev
   한민족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

박종성
Next
    "다이아나는 암살됐다" 영·프 첩보기관 합동작전 [1]

박종성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 Ze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