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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감상문) 경계를 잃어버린 사랑 : 폭풍의 언덕
Name   박종성 
(감상문) 경계를 잃어버린 사랑 : 폭풍의 언덕  
경계를 잃어버린 사랑 : 폭풍의 언덕
교육대학원 영어교육전공            200372034            김미경

“내가 애원하는 전부는-/ 삶과 죽음을 통하여/ 쇠사슬의 속박에서 벗어난 영혼/ 견디어 낼 수 있는 용기를 지닌!”(‘Tis all that I implore-/Through life and death, a chainless soul/with courage to endure)
                                               - Emily Bronte -

죽음의 사슬마저 속박할 수 없는, 객체와 주체의 경계를 잃어버린 초월적 사랑은 어떤 것일까? 절벽(cliff)에 위태롭게 매달린 야생초 히드(heath)같이 거칠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히스클리프(Heathcliff). 히드가 만발한 황야를 달리는 야생마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했던 캐서린(Catherine). 굶주림에 허덕이는 야수처럼 격정적이고 생존적인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빅토리아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1801년 세입자 록우드(Lockwood)가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를 방문하면서 잔잔하게 펼쳐진다.
이름만큼이나 폐쇄적이고(lock) 열정이 결여된(wood) 영국신사 록우드는 사교계의 세련된 매너와 도덕적 관습에 길들여진 인물이다. 그런 그가 “불안정한 대기가 동요하듯” 늘 긴장과 위험이 도사리는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에 발을 디딛는 순간 만성적 판단의 오류를 일이키기 시작한다. "악"(evil)의 상징인 히스클리프를 “훌륭한 사람”(a capital fellow)으로 생각하고, 그의 며느리 캐시(Cathy)를 부인으로 착각하며, 좋은 대접 대신 히스클리프의 개들에게 물리는 봉변을 당하면서 그의 인습적 사고는 혼란을 겪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상식을 뛰어넘은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운명적 만남은 캐서린의 아버지 언쇼(Earnshaw)가 히스클리프를 워더링 하이츠로 데려오면서 시작된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이 집시소년의 출현은 자신의 검은 피부처럼 그의 주변을 증오와 질투로 오염시킨다. 히스클리프에 대한 언쇼의 편애. 그로 인해 질투의 화신이 된 아들 힌들리 언쇼(Hindley Earnshaw)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히스클리프를 학대하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라. 펜 대신 쟁기에, 사랑 대신 채찍에, 훈훈한 난로가 대신 거친 들판에 익숙해진 인간이하의 삶에서 누구인들 히스클리프만큼 복수심에 불타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삶의 유일한 희망이던 캐서린이 “새(thrush)가 날아다니는(cross) 평화로움이 흐르는 집” 드로스크로스 그레인지(Thrushcross Grange)의 상속자인 에드가 린튼(Edgar Linton)을 선택하자 그의 인내심은 한계에 이른다.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는 것은 신분을 낮추는 일이야”(It would degrade me to marry Heathcliff)란 캐시의 말을 엿들은 히스클리프는 그 충격으로 집을 나간다. “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나, 언제나 내 마음에 있어. 내 자신의 존재로서”(I am Heathcliff - he's always, always in my mind - as my own being) 라고 말할 만큼 영혼의 동반자로 히스클리프를 선택한 캐서린. 그녀는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고 세속적 허영을 선택한 결과가 몰고 올 엄청난 파장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시간은 흘러 3년 뒤 히스클리프가 다시 나타난다. 돈 많은 신사가 되어 나타난 이 미남 청년에게서는 더 이상 야만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고, 캐서린은 그와귀환을 뛸 듯이 기뻐한다. 그러나 린튼의 동생인 이사벨라(Isabella)와의 야반도주를 전조로 처절하고 사악한 복수의 그림자는 이미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힌들리를 노름과 술독에 빠뜨림으로 재산을 저당잡고 아내 이사벨라를 학대하는 한편, 캐서린을 찾아옴으로 린튼과 캐서린에게 심적 고통을 준다. 또한 캐서린의 죽음 후 그녀의 관을 열어 린튼의 머리카락 대신 자신의 머리카락을 집어넣고, 린튼가의 유일한 혈육인 캐시를 납치하여 히스클리프 자신의 아들인 린튼과 결혼시킴으로서, 아들의 죽음이후 린튼가의 재산과 언쇼가의 재산 모두를 독차지한다. 다른 새의 둥지에서 살다가 성장하면 둥지 전체를 차지해버린다는 “뻐꾸기의 역사”(cuckoo's history)를 펼치는 히스클리프는 하녀 넬리(Nelly)의 말처럼 다른 이의 피를(생명을) 먹고사는 “흡혈귀”(vampire)일까?
그러나 독자들은 놀랍게도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대하는 태도에서 감추어진 진실과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히스클리프와 린튼의 대치로 심적 고통을 겪던 캐서린은 금식과 뇌막염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맞게 된다. 죽기 전 그녀를 찾아갔던 히스클리프는 가롯유다를 용서하는 예수처럼 “당신이 내게 한 것을 용서하오. 난 나의 살인자를 사랑하니까”(I forgive what you have done to me. I love my murderer)라고 말하며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동안 그가 겪었을 심리적 상흔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캐서린의 죽음소식에 “난 내 영혼 없이 살 수 없어”(I cannot live without my soul)라고 절규하며 “미친개”(a mad dog)처럼 나무에 부딪혀 피를 흘리는 모습, 평생의 숙적이던 힌들리의 장례식 행렬을 묵묵히 따라가는 모습은 그에 대한 연민의 정을 일으키는 동시에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게 해준다.
하지만 부인 이사벨라, 힌들리, 자신의 아들 린튼 히스클리프(Linton Heathcliff)를 비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정한 남편, 비정한 아버지인 히스클리프는 악마적 이미지를 탈피할 수 없다. 물론 그가 이렇게까지 잔인하고 무감각해진 것은, 다른 피부색을 지녔고 무산자라는 이유로 받은 편견과 학대로 인함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그러나 “나에겐 동정심이라곤 없어. 벌레들이 더 꿈틀댈수록, 난 더 그들의 창자를 짓밟고 싶어”(I have no pity! The more worms writhes, the more I yearn to crush our their entrails) 란 독백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주위 사람들을 짓밟을수록 기쁨을 느끼는 가학적, 악마적 성향은 그가 과연 정상인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달리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런 광기가 있었기에 죽음까지 불사하는 정열적 사랑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캐서린을 잊지 못하는 순애보 히스클리프. 그는 캐서린의 환영을 본 후 잠자는 것도, 먹는 것도 잊어버린 채 황야를 헤매다가 결국 단식으로 인해 굴곡 많던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다. 세상의 음식을 거절하고 하늘에서 내려주는 만나만을 먹고살았던 구약의 이스라엘백성처럼, 세상이 제공하는 삶의 에너지를 거절했던 두 사람. “죽는다는 것은 격렬한 맞이하는 것인 동시에 새로운 길목에 접어드는 것이다”(Dying is a wild night and a new road)라는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말처럼, 죽음을 통해 현실의 한계를 뚫고 영원한 자유를 누리기 원했던 두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 하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이 황야에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내용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육체를 벗고 영혼이 되어서야 드넓은 황야를 뛰어다니며 제한 없는, 속박없는 사랑을 누리게 됨을 암시해준다.
한편 히스클리프의 죽음 이후 그의 복수는 막을 내리고 새 희망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Hareton)과 캐시는 서로 사랑하게 되고, 결국 1월 1일에 결혼식을 올린다. 산토끼(hare)처럼 길들여지지 않은 온순함을 간직한 해어튼은 히스클리프의 학대로 인해, 대접으로 차를 마시고 손도 씻지 않은 채 빵을 먹을 만큼 원시적인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따뜻하고 지적인 캐시의 도움으로 인해 글을 깨우치고 단정한 복장을 하게 되면서 ‘문맹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는 탈출구를 찾게된다.
두 사람이 힘을 합해 황폐한 워더링 하이츠의 뜰에 드로시크로스 그레인지의 식물을 심는다는 것은 퍽 의미심장하다. 순화된 3세대가 사랑의 힘으로 반목과 대치의 상황을 종식시키고 두 집안의 화합을 가져옴으로서 gloom을 bloom으로 바꾼다. 결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는 이 소설을 통해 치우침 없는 사랑이 최고의 치유책이며, 자연과 문명이 조화를 이룰 때 인류사회 전체에 균형과 평화가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특이한 구성기법과 곳곳에 감추어놓은 대사 하나하나를 통해 소설 전반에 걸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첫째로 액자식 구성을 통해 소설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외부서술자인 록우드의 이야기 속에 내부서술자인 넬리의 이야기가 들어있고, 넬리의 이야기 안에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구성방식은,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전지적 작가 시점과 대조해볼 때 생동감과 흥미를 유발한다. 또한 독자들이 스스로 다양한 서술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진위여부를 판단하게 함으로 인해 독자의 분석적, 비판적 사고와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둘째로, 당차고 긍정적인 여성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폭력과 분열을 야기하는 것은 주로 히스클리프, 힌들리, 집사 요셉과 같은 남성인 데 반해, 여성들은 주로 화해와 평화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인물인 캐서린과 캐시는 오만해 보일 만큼 당당하고(daring), 굽히지 않는(unbending) 영혼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각각 히스클리프와 해어튼에게 글을 깨우쳐주고 사랑을 가르쳐줌으로서 야만인을 문명인으로 변화시키는 교사의 역할을 한다. 내부 서술자인 넬리 또한 언쇼와 린튼 두 가문을 오가며 중재하는 peacemaker로서 여느 하녀와는 달리, 많은 책을 읽고 올바른 사리판단을 할 줄 아는 교양 있는 여성으로 제시되고 있다.
셋째로 푸코의(Foucault)의 ‘타자의 윤리학’이 반영되어 있다. 독자들이 히스클리프에게 전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없는 것은 그가 인생초기에 경험한 ‘타자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다. 푸른 인생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던 유년기부터 히스클리프가 체험한 세상은 공평한 세계가 아니었다. 캐서린은 자신의 집에 들이면서 “사악해 보인다”는 이유로 히스클리프를 내쫓아버리는 린튼경, 히스클리프의 한번의 발길질에 눈물을 흘리는 나약한 에드가 린튼, 유령이 된 캐서린의 손을 깨진 유리창에 대고 피가 뚝뚝 떨어질 때까지 문지르는 록우드, 이들은 겉으로는 교양과 재산을 소유한 빅토리아 젠트리지만, 재산․지위․학벌․외모와 같이 외면적인 조건만으로 내면을 평가하는 모순적인 인간상이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상류계층의 나약성과 잔인성, 더 나아가서는 다른 인종과 무산자들에게 ‘계몽과 이성’이라는 미명 하에 온갖 만행과 부조리를 저지를 수 있는 그들의 위선을 통렬히 꼬집어 준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소설에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힌들리의 도를 넘는 가학성, 자신을 길러준 언쇼가문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편집광적인 복수, 히스클리프와 린튼 두남자 모두를 소유하고자 하는 캐서린의 욕망은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고립된 두 집안 사이의 유혈극과 유령이 출몰하는 비현실적 소재를 택함으로서 현실성을 떨어뜨리며, 사실적 묘사에 치중하는 영국문단과 ‘질서’(order),'명예‘(honor),'신용’(trust),'의무‘(duty)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귀는 영국사회에 얼마나 큰 파장과 위협을 가져왔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 할지라도 죽음을 초월한 경계 없는 사랑을 갈구하던 여인 캐서린, 암반에서 솟구치는 생수와 같은 야성과 정열의 소유자 히스클리프, 질투의 화신이 된 탕자 힌들리 등 어느 소설에서도 모방할 수 없는 등장인물의 독특한 성향. 바로 그것이 소설의 묘미를 더하는 동시에 지역과 시대를 초월한 여운과 울림을 남겨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낭만적 반항아” 에밀리 브론테의 문학적 위대성과 천재성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copyright 2003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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